박정희 대통령의 상징처럼 된 이 사진은 1969넌 9월 18일 제1회 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 경진대회 대통령 치사에서 최고 성공 사례로 뽑힌 하사용 씨를 가리키며 “하면 된다”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해봅시다!” 하고 발언하는 순간을 찍은 것이다.
(자료 출처: 고병우, 새마을운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기파랑, 2020)

“하면 된다”

“가난은 본인의 스승이자 은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24시간은 이 스승, 이 은인과 관련이 있는 일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다.”

1969년 9월 18일. 지금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시민회관에서 전국 각 시.도별 농특사업 경진대회가 개최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임석 하에 정일권 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농어민 소득증대 지원협의회 위원인 관계 부처 장관들과 시,도지사 전원, 농특사업 지구의 시장, 군수 들이 전원 참석하였다.
중앙 및 지방의 관계 공무원들과 참여 농어민들이 참석해 인산인해를 이룬 대규모 집회였다.

대회의 하이라트는 성공 농어민의 성공 사례 발표였다. 전국 농어민 중에서 최고로 뽑힌 사람이 충청북도 대표로 나온 하사용 씨다.
하 씨는 충북 청원군 강외면 중복리에서 비닐하우스 농업으로 성공한 농민이었다.

하사용 씨의 성공 사례 발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너무도 가난하게 태어나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엿장수를 하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가외면 부잣집에 머슴으로 들어갔다. 7년간 머슴살이를 하며 새경을 그때그때 받지 않고 주인에게 맡겨두고 그 집 식모로 들어온 여자와 결혼을 하고 지냈다.
그러던 중 농특사업을 알게 되어, 비닐하우스 사업을 하면 좋겠다는 결심을 하고 7년 새경을 다 털어서 불모지의 자투리 땅 200평을 샀다.
부부 둘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 땅의 돌을 걷어내고 땅을 파고 일구고, 거름 주고 또 일구고 해 가며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부부가 하우스를 지키며 1년을 싸운 결과 농작물들이 탐스럽게 자라 이것들을 내다 파니 이렇게 부자가 되었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한 인간이 열심히 하니 이렇게 됐다는 이야기를 눈물로 소개하니 장내가 모두 숙연해 졌다.

경진대회 마지막 순서는 대통령의 치사였다.
실무자가 청와대 공보비서관실의 협조를 받아 준비한 대통령 치사문을 연단 위에 올려 놓았으나, 단상에 오른 박정희 대통령은 원고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손을 번쩍 높이 들어 하사용 씨 쪽을 가리키며

“저렇게 가난한 사람도 열심히 하니 저렇게 성공하지 않습니까.
하면 된다!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해봅시다!”

하면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할 수 있다’의 새마을 정신. Can do spirit 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우리 농촌의 모든 어려움은 농민들이 스스로 노력해야 해결됩니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하사용 씨가 부자가 됐습니다. 가난은 나라도 구재 해 줄수 없습니다. 농어민들이 스스로 일어나 자기 힘으로 춘하추동 열심히 일을 하면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진리를 되새깁시다.”

오늘은, 사진에 담긴 의미를 알고나니 박 대통령의 모습이 더욱 새롭게 느껴집니다.

“가난은 본인의 스승이자 은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24시간은 이 스승, 이 은인과 관련이 있는 일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박정희 어록 :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